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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성에서 만난 숨겨진 비경

바닐라프레소 2026. 6. 12. 00:15

 

1 신선거 풍경구의 남문 매표소 뒤로 아름다운 바위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다

2 신선거 정자 아래로 보이는 산은 흐린 날이면 이곳에서 운무가 피어오른다

3 불조봉은 부처의 얼굴을 꼭 닮았다. 북관대에서 하관대로 가는 방향에서 볼 수 있다

4 신선거 걷기 코스에 있는 중관교 휴게소. 음료, 간단한 간식거리를 판매한다

5 신선거 풍경구의 남문 매표소 뒤로 아름다운 바위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다

신선이 되어 걷는 길, 신선거(神仙居)

저장성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는 신선거다. 과거에는 영안(永安)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북송의 진종(眞宗) 황제가 다녀간 이후, 그는 이곳이 마치 ‘신선이 사는 마을’ 같다 하여 신선거(神仙居)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신선거는 이제 막 중국 명산 여행에 눈을 뜬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남쪽은 태 항산(太行山)처럼 웅장하고 북쪽은 장가계(張家界)처럼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1억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생긴 봉우리들이 해발 700~800 미터에 걸쳐 있기에 산책하 듯 걸어 장엄한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겨울철에도 따뜻한 기온과 황사 없는 맑은 공기 덕분에 오래간만에 온몸이 개운하다. 가을날처럼 선선한 바람이 마중 나온 날씨.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영파에서 출발한 차는 홍차오 공항에 서 온 만큼을 다시 내달렸다. 북문 주차장 입구, 기념품 가게를 지나면 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호젓한 삼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던 작은 봉우리들은 어느새 두 손으로 가려도 넘칠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신선거는 암봉으로 이뤄진 곳입니다. 이들에는 저마다 특별한 이름이 있어요. 서쪽 방향으로 하늘을 여는 봉우리는 서천문, 장군의 옆얼굴을 띈 바위는 장군암, 잠자는 미인의 모습과 비슷한 봉우리는 미인 바위라 부르는 것처럼요”.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모양새와 이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숲길과 폭포가 반복되는 평평한 산책로 끝, 길은 좌우로 갈라진다. 이 갈림길에서 등산객은 해발 1,200미터의 신선거를 도보로 오르는 것과 케이블카를 타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신선거의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으니 오직 등산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면 케이블카 코스가 낫다. 더 오랜 시간 경치를 즐기고 북관대, 불조봉(佛祖峰) 등 신선거의 명소도 걸어볼 수 있다. 케이블카는 가파른 등산로와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 북문 케이블카 정류장에 멈춘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곧장 북관대가 나오고, 왼쪽으로는 트래킹 코스가 시작된다. 북관대 전망대에서면 이름처럼 신선거 북쪽을 조망할 수 있다. 수많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싼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발걸음은 자연스레 하관대로 향한다. 험준한 벼랑에 인위적으로 길을 놓은 잔도(棧道)가 이어진다. 매일 수백 명이 오가는 안전한 길이지만, 공중에 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리가 후들거린다. 서쪽에서 노을을 볼 수 있는 하관대, 부처의 옆얼굴을 닮은 불조봉 앞에 도착할 때까지 웅장한 경관이 주는 감동과 아찔함이 반복된다.

케이블카 정류장 앞에서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길은 나무데크와 잔도로 나 있다. 표지판만 잘 따라가면 산책 수준의 평탄한 길이 이어지니 그리 힘들지도 않다. 이에 비해 중간 중간 모습을 드러내는 등산로는 경사가 무척이나 심하다. 산 좀 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길이다. 과거 신선 거의 길은 이러한 비포장도로가 많았으나, 현재는 누구나 걷기 좋은 길이 대 부분이다. 불해범음(佛海梵音) 구간에 들어서면 거판애(鋸板崖)~소요협(逍遙 峽)~동승대(東升台)~낙수대(樂壽台)~북해관(北海館)까지 이어지는 1 킬로미 터의 숲길이 등장한다. 다음으로는 연우정, 중관대, 청도각 등 걷기와 쉬기를 번갈아 할 수 있는 1.5킬로미터 길이의 청벽정취 구간이 기다린다. 모든 길이 아름답지만, 역시나 신선거의 하이라이트는 남천교(南天橋)다. 120미터 길이 출렁다리 위를 걷는 것은 잔도보다 한층 더 스릴 넘친다. 남천교와 신선거 남 쪽을 조망하는 남관대에 서면 홀로 우뚝 솟은 관음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지는 과두천서(蝌蚪天書) 길에서도 관음봉(觀音峰)과 주변 봉우리의 기묘한 자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신선거 여행은 남문과 북문 두 곳에서 출발할 수 있다. 남문쪽 풍경이 더 극적인지라 남문에서 시작하면 산행이 심심하게 느껴질 법하다. 반면 북문에서 남문으로 가는 길은 서서히 더욱 장엄한 광경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남천교와 관음봉으로 정점을 찍는다. 해가 지기 전에 남문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 도착지점에는 내리막길이 있다. 걷는 동안 등산로 옆으로 힘차게 흐르는 신용 폭포, 주작 폭포, 취선 폭포에도 시선이 닿는다.

그렇게 천천히 내려가기를 30분. 어느덧 등장한 남문 매표소가 산책의 끝을 알린다. 신선거의 환상적인 풍광은 예부터 있던 터라 중국 역사에 여러 번 등장했다. 당나라 시인 이백두, 청나라 건륭제 등이 다녀갔는데, 특히 건륭제는 운무가 낀 산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신선거라 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풍경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선경이었다. 오랜 시간 바위가 제살을 깎으며 만들어 낸 경치는 가까이 갈수록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과연 진종 황제가 이름 붙였던 것처럼 신선이 되어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저장성의 비경이다.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설두산(雪窦山)

절강성에는 자연이 만들어낸 절경이 또 있다. 영파시 시코우진(溪口鎭)에 있는 설두산(雪窦山)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 근대 문화의 유산과 아름다운 풍경이 산과 그 주변에 모여 있어 저장성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으로 꼽힌다. 설두산의 명성과 별개로 시코우 역시 타이완 국부 장제스의 고향이자 그의 아들 장경국이 태어난 곳으로 도 유명하다. 설두산은 물과 숲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전체를 멀리서 보면 산 수화 그 자체다. “북송 시대 인종은 꿈에서 본 아름다운 산을 잊지 못해 전국의 화공을 불러 이를 그리게 했어요. 결국 자신의 꿈속에서 본 산과 똑같은 곳을 찾아냈는데, 그곳이 바로 설두산이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구화산, 오대산, 보타산, 아미산과 더불어 중국 불교 5대 명산에 속한다. 산자락에 있는 설두 사는 진나라 시절에 세워지고 당나라 때부터 송나라 때까지 전성기를 맞이한 천년 고찰이다. 수 차례 복원으로 옛것이 간직한 멋은 다소 덜하지만, 50미터 크기의 미륵 대불이 있어 불자에게는 미륵 성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설두산의 트레킹 길은 독특하다. 아래에서 위로 가는 일반적 산행과 달리, 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해 위쪽에 도착한 후 아래로 내려가는 코스로 걸어볼 수 있다. 산 행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폭포들이다. 그 이유는 설두산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 다. “산 정상 유봉에서 하부까지 백색의 폭포수가 흐릅니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눈 이 흘러나오는 구멍이라 하여 설두(雪窦)라고 불렀어요. 눈이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곳에 설두산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죠 “.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20분간 이동하면 삼은담에 도착한다. 삼은담(三隐潭)이란 상은담, 중은담, 하 은담의 세 가지 폭포와 연못을 가리킨다. 한자어에서 추측할 수 있듯 상, 중, 하 순 서로 세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 폭포수가 흐르며 자연스레 삼절 폭포가 형성된 것이다. 다시 천장암 폭포로 향한다. 천장암 폭포는 설두산에서 가장 웅장한 폭포다. 산 정상에서 발원한 물이 험준한 암벽을 타고 흘러 깊은 연못으로 떨어지는데, 그 길이가 186미터에 달한다. 천장암 폭포 위에 자리한 묘고대는 삼은 담-묘고대 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다.

장개석은 설두산을 사랑했다. 큰 결단을 내릴 때면 그는 설두산의 산책로를 찾았 다. 본래 이 자리에는 사찰이 있었지만,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던 장개석이 1927년에 개인 별장을 세웠다. 별장의 방 6개는 모두 하나로 연결된 구조다. 방마다 장개석이 이곳에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국민당 정부 시절 그의 사직 문서, 손문의 위 임장 등을 전시해 두었다. 풍수지리의 덕을 본 걸까. 그는 세 번이나 국민당 정부에 의해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지만, 마침내 타이완의 국부가 된다. 이 길을 함께 걸은 아들 장경국 또한 대를 이어 총통의 자리에 오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묘고대(妙高 台)로 향하는 길,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 사이로 무지개가 뜬다. 지상의 것이라고 하기엔 비현실적인 풍광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폭포수 때문에 눈이 부시다. 신비로운 광경들은 그대로 설두산 끝자락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로 곧게 뻗어 올린 나무들이며 뽀얀 호수들은 금방 산수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그림 같은 풍경이란 말은 이런 장면 앞에서 쓰는 것일 테다. 그림과 다른 게 있다면 모든 것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우거진 수풀 사이로 시원한 풀냄새가 몸을 감싸고, 정자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노래가 되어 귓에 맴돈다.

 

1 설두산 주변에는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맛 나는 음식이 있다 2 삼은담 중 가장 위쪽에 자리한 상 은담. 나무 수풀에 가려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아름다운 백색의 폭포를 볼 수 있다 3 중국 5대 10절 중 하나라 불리는 설두사. 멀리에서도 황금을 두른 미륵보살을 볼 수 있다 4 꼼꼼하고 섬세하게 건축된 절두사의 정면 모습 5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설두산의 풍경을 빛나게 한다 6 절두사를 찾은 관광객이 소원을 비는 향을 피운다

 

1 3 자성고진의 골목에서 만난 소박한 모습들. 낡은 집들 사이를 걸어보며 풍요로웠던 강남 마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5 6 장 씨 고거는 설두산과 영파 시내 사이에 있다. 영파 쪽으로 나가면 각종 음식점과 상점이 줄지어 있다. 영파시는 중국 내에서 부유한 지역에 속한다. 도로가 깨끗하고 살기도 좋다

4 7 일자로 쭉 뻗은 도로는 길이가 아주 길지 않아 걸어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영파(宁波)의 고즈넉한 옛길을 걷다

설두산 자락에 자리한 장씨고거(蒋氏故居)에는 장개석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있다. 장개석의 고향 마을 길로 장개석이 예전에 살던 집인 풍호방, 장개석의 조부와 부친이 운영하던 소금 판매상 점 옥태염포, 장경국이 살던 소양방 등의 건축물이 있다. 모든 공간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까닭에 1996년 전국중점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됐다. 장 씨 고거(蒋氏故居) 길을 걸을 때면 1930년대로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든다. 영파(宁波)에 가면 자성 고진(慈城古陣)도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영파 중심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 설두산 여행 전후로 방문하기 좋다. 성벽 밖으로는 수려한 산수가, 성벽 안쪽으로는 절간, 묘, 명승고적 등이 널려 있어서 당나라 729년에 세워진 이래 강남 제일의 옛 성이라 불렸다. 명성에 한몫을 더한 것은 이곳 출신의 출중한 인물들. 당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천 년 동안 수많은 유명 인사, 상인들을 배출했다. 시험장인 교사관, 공자 묘 등 넓은 공간에 걸쳐 명청시대 모습을 완벽히 재현한 것이 특징이다.

천천히 성벽길 산책에 나섰다. 골목으로 발을 돌리니 햇볕 좋은 곳에 널어놓은 빨래, 낡은 자전거 에서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잘 다듬어진 성벽이나 옛터보다 오히려 이런 풍경에 마음이 통한다. 골목들을 느리게 걸어보는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정겨운 분위기 때문에 쉽게 발을 뗄 수 없다. 저장성 여행 중 헤르만 헤세의 여행 에세이인 속 한 문장이 떠 올랐다. ‘여행자는 모든 것을 보거나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일주 여행 차표로 스위스 전 국토를 여행한 자보다 알프 그의 두 개의 산과 골짜기를 둘러본 사람이 그곳을 더 잘 알게 된다고 했다. 저장성 여행에서 이틀 동안 두 산과 작은 마을 두 곳을 걸었다. 오고 가는 시간을 모두 합하면 총 3박 4일. 그저 보는 것에 욕심냈다면 충분히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헤세의 글처럼 많이 보는 것이 그곳을 더 잘 안다는 것과 달랐다. 오래도록 같은 풍경 속에 머물며 진정 마음으로 이 땅과 가까워진 이틀. 저장성 그리고 중국의 산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신선이 되어 오르던 산, 장개석과 수많은 사람이 바라보았던 설두산의 폭포는 이제 사진과 그림 밖으로 나와 내게 말을 건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소박한 마을과 신비로운 풍경 속을 걸으며 저장성의 숨은 비경을 알게 된 셈이다.